낭설

금빛 소매의 노래 - 슬픔이 없는 십오초中

2023. 11. 23. 06:54

추억이여, 내가 너를 어두운 골목길에서 찾아 헤맬 때부터 너는 이미 내 안의 막다른 길 끝에 기대어 그 길 끝을 손바닥 위에 탁탁 쳐서 능숙하게 담뱃불을 붙이고 있었다 비애, 비에 젖어 잘 타지 않는 존재 속에 영원히 타고 있는 노래여, 모든 망명에는 보이지 않는 행운이 있다
한 줌의 배곯은 마음으로 악보 사이를 서성이며 나는 자주 기웃거렸다, 추억이여, 너는 언제나 모르는 노래였다 바깥은 접으면 안이 구겨진다 군대가서 절망한 친구는 자살했지만 절망해서 군대 간 친구는 잘 살았다 안을 수십 번 접어도 바깥은 한치도 구겨지지 않는다
봄이면 느리게 바지춤 추켜올리는 나목, 내가 쓰러지기 직전엔 언제나 앉은뱅이 꽃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알았다 꽃이 문드러지며 뱉어내는 꽃물이 꽃말의 형식인 것처럼 눈물이 네 노래의 형식이라는 것을, 추억이여, 도망갈 곳을 모르겠다 가출하는 게 행복하리라...... 안에는 바깥이 없다, 아니 너무 많다
긴 암전( 暗轉) 이 있었다 그때 나는 굽은 등 아래 동그랗게 어둠을 뭉쳐 필사적으로 달았났다 상처의 마지막, 아직 덜 아문 갯벌 끝에 서서 나는 수평선까지 덮인 거대한 허물을 바라보았다 파도를 끌어당기며 저음에서 더욱 불거지던 노래의 근육, 오오, 추억이여, 네 한 팔의 금빛 소매를 이제, 내 한 팔로, 쭈욱, 걷어 올려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