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실은 고통스러운 눈으로 말리와 대장군을 번갈아 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아실은 지멘을 올려다보았다. 먼 옛날부터 그녀의 시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지멘의 눈이 거기에 있었다.
"지멘. 황제를 죽이고 제 증오를 되찾겠다고 했죠."
"죽이는 것이 해결책이라면, 그렇게 한다."
"제 증오를 되찾을 수 있다면 세상이 망해도 된다는 건가요? 600조 가까운 사람의 목숨을 대가로 사랑도 아니고 동정심도 아니고…… 증오를?"
검은 레콘은 먹구름을 등진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 미래는 죽은 사람이 정해놓았고, 내 과거는 내가 죽일 사람에 의해 되새겨지던 시절이 내게 있었다."
아실은 숨소리를 낮추었다. 지멘이 말했다.
"기원이 없는 나날이었다. 기원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원할 시간이 없어서. 움직임뿐이었지. 매일 제국군에게 쫓기고 한달에 대여 섯 도시를 떠돌고 반년에 한 번씩 황제의 세금수송대를 습격하고 3년에 한 번 꼴로 지붕 밑에서 자곤 하던 어느 때, 나는 물구덩이와 어둠에 붙잡혀 꼼짝할 수 없게 되었다."
아실은 그 밤을 기억했다. 얼어붙은 거대한 레콘과 비틀거리는 작은 인간이 밧줄로 서로를 묶은 채 신음하며 어둠을 가로지르는 밤이었다.
"너는 물구덩이를 증오하고 붙잡힌 자신의 상황을 증오하고 무기력한 나를 증오했다. 그 증오로 너는 나를 이끌고 거기를 벗어났다."
"증오가…… 그건 증오가……"
"증오였어. 너였어."
"내 소망 때문에……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황제와 제국을 증오했지."
아실은 신음하며 죽어가던 즈라더를 떠올렸다. 즈라더는 그녀에게 자신과 황제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질문했고 아실은 즈라더에게 싫어하는 것과 증오하는 것의 차이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황제를 증오했다. 지멘이 말했다.
"너는 분리주의의 숨은 전제가 사람들이 자신과 대등한 존재를 정말 자신과 똑같이 받아들인다는 것이라고 했지. 그런데 그러려면 사람들은 서로를 증오해야 할 것 같아. 왜 그러냐고 묻지는 마. 내가 느끼는 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냥 레콘의 감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속편할지도 모르겠다."
지멘은 자신에게 짓눌린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가 망치를 힘있게 부여잡았다.
"나는 네 증오를 되찾을 거야. 반드시."
"반드시?"
"그래."
아실은 지멘을 바라보았다. 지멘이 그녀에게 되찾아주고 싶어하는 증오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아실은 지멘을 보며 생각했다.
'도와주고 싶어요.'
먹구름 사이에서 우르르릉 하는 천둥이 들려왔다. 방향성 없는 벼락의 번득임도 보이는 것 같다. 그들은 폭풍의 유년기에 해당하는 비구름 옆을 지나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구름의 포효가 멀리서 들려왔을 때 아실이 몸을 돌렸다. 그녀는 말리를 흘끔 바라보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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